오후 3시.. 맛있는 점심 후에 찾아온 오후진료, 이 시간쯤 되면 진료실은 그리 붐비지도

조용하지도 않은 딱 기분 좋은 정도의 분주함이 있습니다.

그때! 입구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옵니다. 문소리와 더불어 조건반사와도 같은 저의

환한 미소와 밝고 경쾌한 인사소리 “어서 오세요~!!”

하지만 누군지 확인하는 순간, 조용하고 평온하던 저의 오후시간은 와장창 깨져버리고 제 머리

는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. 제 머리 속에 판단이 끝나기도 전에 제게로 다가와서 티 하

나 없이 맑은 얼굴로 웃으시며 껌 한 통을 내미시고는 “500원만 줘요`”

이런 경험 다들 있으시죠??

아시겠지만 참 많은 분들이 참 많은 품목을 가지고 치과를 찾아오십니다.

휴지는 기본이구요. 모나X볼펜 한 자루에 1000원이라는 설명과 “착하게 살자”란 문신을 보여

주시는 분, 유학생이라며 수 공예품을 가져와 사달라고 부탁하는 외국인에 한 번은 칫솔을

가져와 파시려는 분도 계셨답니다. 사드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,

물건의 가격에 비해 질이 턱없이 낮다거나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턱없이 비싸다거나.. 이런

것 때문에 종종 잡상인 분들과 저희 사이에는 실랑이가 벌어지곤 하죠.

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하시나요? 모두 각각의 방법이 있겠죠? 그런데 저희 병원에 가끔 오

셔서 껌 한 통에 500원이라고 사달라는 일명 “껌 아저씨” 란 분이 계신데요. 이분은 500원을

드리면, “껌은 1000원～”이라며 500원만 가지고 가버리세요. 보통은 그냥 어이없이 웃으시

면서 그냥 보내드리지만 그 날은 저 두 기분이 좀 안 좋은 날 이였나 봐요. 유유히 나가시는

아저씨를 붙잡고 화를 냈죠. “아저씨! 아까 분명히 껌 한 통에 500원이라구 말씀해 놓구 이

게 뭐예요! 500원 돌려 주시던지 껌을 주시던지 하세요!”

단호한 저의 목소리에 아저씨가 움찔 하시더군요.

“어떻하실래요! 돈 돌려 주실래요? 아님 껌을 주실래요?” 점 점 험악하게 변해 가는 제 얼굴

을 보시며 그때 아저씨가 이러시더군요. “배가 고파서 그래～그럼 먹을 꺼 라도 좀 줘...?

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더라구요.. 환자에게 피해줄까 봐,

원장님께 미안해서 어느 순간부터 그 분들을 보면 `아~~ 짜증나!! 어떻해 야 조용히 쫓아

보내지?”만 생각하던 제가 부끄럽더군요. 얼른 달려가 제가 우유 한 팩을 가져다드리자 아

저씨는 말없이 껌 한통을 주시면서 나가시더군요. 가끔은요. 들어서자마자 “저희 필요없어

요..가세요~”라고 인상쓰는 대신에 오신 분들게 그냥, “못 사드려서 죄송해요/ 대신 시원한

물 한잔 드시고 가세요!!” 라고 방긋 웃어봐야 겠어요.